요리코가 죽었다.
교수 니시무라 유지와 동화작가 니시무라 우미에 부부. 14년 전 우미에는 교통사고를 당해 하반신의 기능과 뱃속에 아들을 잃었다. 아들을 잃고 다시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몸이 된 니시무라 부부의 희망은 오직 외동딸 요리코뿐.
그 요리코가 살해당했다. 경찰은 변태 살인범의 소행으로 단정하고 있지만 니시무라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다. 심지어 부검 결과 열일곱 살인 요리코는 임신 중이었다. 충격도 잠시, 경찰은 그런 중요한 사실조차 수사에 반영하지 않고 사건을 덮으려고 하는 듯 보인다.
아버지 니시무라는 요리코를 임신시킨 사람이 요리코를 죽인 게 분명하다고 생각해 독자적으로 조사를 하고, 요리코의 학교 선생인 히이라기를 범인으로 단정한다. 결국 아버지 니시무라는 히이라기 선생을 죽이고 음독자살을 계획한다.
그리고 혼자 살아남을 아내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도록 요리코의 죽음부터 히이라기를 죽이기까지 자신의 행보와 감정에 대한 수기를 남긴다.
이 사건에 대한 풍문을 봉쇄하려는 윗선에 반발하여, 노리즈키 경시는 아들 린타로에게 니시무라 유지의 수기를 읽어보고 사건을 재조사할 것을 요청한다. 린타로는 니시무라의 수기에서 모순되는 서술들을 발견하고 니시무라 유지가 수기에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확신한다.
이후 노리즈키 린타로는 니시무라 우미에, 우미에의 오랜 친구와 간병인, 사건 담당 형사, 니시무라의 제자, 요리코가 검진을 다녔던 산부인과 의사, 가십지 기자, 요리코의 친구 등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히이라기 선생에 대한 추문, 얌전한 모범생이었던 요리코의 교우관계, 니시무라 부부의 과거 등을 그러모아 마침내 진실을 알게 된 노리즈키 린타로는 요리코를 죽인 범인을 찾아간다.
"당신은 대체 어느 편이야?"
"진실의 편이죠."
과연 노리코를 임신시키고 살해한 사람은 누구일까.
진실을 알게 된 노리즈키 린타로는 어떤 선택을 할까.
첫 번째는 요리코를 위해 죽었고, 두 번째는 당신을 위해 죽는다.
작중에 "후견지명"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원래 있는 말은 아닌 것 같고 선견지명의 반대 의미로,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증거를 끼워 맞춘다는 의미로 사용됐다. 니시무라 유지의 수기의 모순점을 두고 사용한 말이었지만, 린타로의 수사가 딱 이런 모양인 것 같다. 보다 보면 노리즈키 린타로는 이미 수기를 읽었을 때 얼추 진상을 깨달았고, 자신의 논리를 검증하기 위해 다른 관계자들을 만나서 청취하는 것 같다.
"그 순간부터 유지는 요리코를 미워했어요."
(중략)
"수기에 나온 감정은 모두 거짓이에요. 유지가 요리코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리가 없어요."
"그럴 리 없지요. 아내는 알고 있었어요. 우미에가 모를 리는 절대 없습니다. 아내는 그런 여자입니다."
1990년작이라고 하더라. 막장 드라마도 이런 막장이 없다. 그린 것 같이 화목한 가족의 이면에는 역겨운 가족애가 있었다. 역겨운 아버지와 역겨운 어머니와 역겨운 딸. 최악을 꼽아보려고 했는데 우열을 가릴 수가 없음. 아버지는 뭔 딸한테 복수를 그런 식으로 하는지, 딸은 아버지한테 복수를 그런 식으로 하는지, 엄마는 남편과 딸에게 뭔 복수를 그런 식으로 하는지, 정말…. 재밌네. 뭐가 요리코를 위해서냐.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만 제 부탁을 들어주시죠. 저 창을 열어주시겠습니까. 제게는 너무 무거울 것 같군요."
린타로는 부탁받은 대로 행동했다.
소설의 구성은 '니시무라(요리코 父)의 수기 - 린타로의 조사 - 린타로의 추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야기 말미에 린타로는 범인에게 가서 그를 추궁한다. 물러설 곳이 없었던 범인이 자살하게 창문 좀 열어달라고 하자 린타로는 부탁 대로 창문을 열어준다. 그리고 실제로 범인은 자살하고 말았다. 자살방조잖아. 엄연한 범죄잖아. 저 시절에는 아니었나?
"다들 저한테 그렇게 묻더군요. 하지만 제 입장을 결정하는 건 저밖에 없지요."
진실을 묻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인 줄 알았는데 정말 아주 시원하게 끝내버렸음. 린타로의 감성을 잘 모르겠다.
※범인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음.
요요리코를 죽인 사람은 아버지 니시무라 유지다. 요리코를 임신시킨 사람이 누군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 정말로 히이라기 선생이었을 수도 있지만, 니시무라 유지는 친딸과 관계를 가졌다는 것 자체에 깊은 혐오감을 느끼고 사랑하는 아내에게 이 사실을 들킬까 두려워서 요리코를 죽였다. 그리고 사건을 덮고 좋은 아버지로 남기 위해 날조된 수기를 남기고 자살을 시도했다.
요리코는 일부러 아버지와 잤다. 니시무라 유지는 14년 전 사고의 원인을 요리코라고 생각해 내심 그녀를 증오하고 있었다. 요리코는 그런 감정을 느끼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기 위해 술 취한 아버지와 동침했다. 이거 완전 미친 사람 아니야?
그리고 반신불수의 아내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니시무라 유지의 외도, 요리코의 임신, 남편과 딸이 관계한 것, 딸을 죽인 사람이 남편이라는 것 모두…. 오히려 교묘하게 두 사람을 조작해서 파국으로 치닫게 만든 흑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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