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리뷰] 고통에 관하여 - 정보라
NSTRA-14의 등장으로 인해 고통의 개념은 신체적인 감각에 중점을 둔 통증의 범위로 축소되었다. 사회적 • 문화적 • 철학적 • 정신적 의미의 고통에 대한 질문은 점차 사라졌다. 고통은 의학적인 문제였고, 의학은 과학기술과 함께 발전하고 있으며, 그러므로 고통은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거나 다른 방식의 시술 혹은 치료를 통해 해결해야 하며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고통은 견디는 것이 아니었다. 견딜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부작용도 없고 중독성도 없는 내성도 생기지 않는 완벽한 진통제가 개발되었다. 이제 고통은 그저 병의 징후인 통증으로만 존재하며 참고 견딜 필요가 없다. 이런 세상에서 오히려 고통을 추구하는 교단이 부상한다.
그들은 통증의 신체적 감각 뿐 아니라 고통에 수반되는 두려움, 절망감, 모멸감, 자괴감, 분노 등의 정서적 반응에도 주목하며 이것이 영혼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므로 고통은 곧 영혼이자 인간의 정수이고, 고통의 근절은 영혼의 멸절이자 신에 대한 거부이며 구원에 대한 모독이었다.
태의 형인 한은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아버지에게 맞으면서도 웃을 수 있도록 진통제를 달라고 했고, 그 말에 충격을 받은 형제의 어머니는 그 길로 집을 나온다. 여기저기를 전전하다 결국 교단에 몸을 의탁하지만 자식들을 빼앗기고 자신은 교단의 노예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어 범죄에 가담한다. 그러다 결국 교단에 의해 통각이 증폭되는 약물을 복용하고 사망한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교단에 들어온 태는 어릴 적부터 형과 함께 교단에서 자라왔다. 교단은 태에게 진통제를 만드는 제약회사에 폭탄 테러를 지시하고 태는 테러를 저지르고 체포된다. 그 폭탄테러로 제약회사의 사장 부부가 죽고 경은 부모를 잃는다. 경은 이 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했지만 어릴 적부터 부모의 실험대상이 되어 학대받고 있었기 때문에 수혜자라고도 할 수 있는 상태였다.
경의 제약회사의 법무팀 직원이었던 현은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경의 청혼을 받고 둘은 결혼한다. 두 사람은 나름대로 괜찮은 부부관계를 유지하며 애정을 키워가지만, 자신을 학대한 부모의 유산인 회사를 버리고 싶은 경과, 경의 고통으로 일구어낸 회사를 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현은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고, 경은 결국 현을 떠난다.
이후 몇 년의 시간이 흐른 뒤, 테러 당시 교단의 중심에 있던 간부들을 대상으로 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태의 테러 및 신도들을 고문 살인했다는 죄목으로 교단은 몰락했지만 음지에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고, 경찰은 교단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태와 그 피해자인 경에게 협조를 요청한다. 태는 자신의 형인 한이 숨어 살던 호수 마을로 경찰을 인도하고, 경은 여전히 법적으로 부부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현과 재회한다.
이야기 초반부터 경과 태는 몸을 섞는데 처음엔 왜 자꾸 이런 묘사가 나오는지 몰라서 짜증 났다. 차라리 그렇고 그런 소설에서 서비스 씬이 나오는 거라면 괜찮다. 그건 그게 목적이니까. 그런데 이건 뭐 서비스씬이 필요한 소설도 아닌데 왜 자꾸 섹스를 하는 거지? 심지어 태는 테러범이고 경은 태가 일으킨 테러로 부모를 잃은 범죄의 피해자인데. 비록 그 부모가 경을 지독하게 학대하고 있기는 했지만.
"너는 내 삶의 어떤 부분을 아주 크게 부숴놨어. 물론 이미 망가져 있어서 차라리 부숴버리는 편이 더 나았을 것 같긴 하지만 나는 너한테 부탁한 적이 없어. 그러니까 너는 내 인생에 마음대로 들어와서 마음대로 부술 권리가 없었어."
그래서 찾은 나름의 이유라고 한다면, 우선 전제는 태의 테러로 죽은 경의 부모가 경을 학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이 테러범인 태를 원망하고 있을 것. 경은 아버지에 의한 친족 성폭행의 피해자였고 성관계는 아마 그녀에게 신체적인 아픔과는 또 다른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태는 교단에 의해 평생 고통을 숭배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고통을 추구하는 그에게 쾌락을 줌으로써 괴롭게 만드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더 읽다 보니 먼저 쾌락을 알 게 한 뒤에 다시 쾌락 없는 삶으로 돌려보내서 고통받게 하려고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이제 그는 삶에서 아주 오랜만에 유일하게 경이 제공해 주었던 타인과의 깊고 강렬한 접촉을 경험했고 그러한 타인과의 접촉이 부재하는 상태가 고통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사건의 시발점이 되는 사건이 있긴 한데 정말 놀랍도록 그 범인과 이유가 안 궁금하다. 게다가 등장인물들 각각의 사연이 자극적인데 반해 묘사가 너무 모호하고 추상적이라 머리에 잘 안 들어온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전부 외자인 것도 별로 좋지 않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동성끼리도 결혼과 임신출산이 가능한 세계이며 현과 경이 동성부부라는 것. 그런 점은 어느 정도 납득을 했다. 납득을 하려고 노력했다. 갑자기 경이 현에게 청혼했을 때는 뭐야 이건 싶었다. 아주 뜬금없게 느껴졌던 것이다. 현은 경의 경우가 아니었다면 여성과 성애적 관계나 결혼 관계를 맺을 생각이 절대 없었을 거라고 했고, 경은 태랑 잤으니까 둘이 원래 동성애자였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경은 친족성폭행의 피해자였고, 아마 현이 남성이었으면 둘의 사이는 로맨스가 아니라 또 다른 강압적인 관계가 되지 않았을까.
가장 맘에 안 드는 부분은 륜 형사가 트랜스젠더라는 점인데 이런 부가적인 설정들이 왜 필요한가 싶은 거지. 신임형사의 캐릭터성을 보여주기 위해? 굳이 안 될 이유는 없지만 이 이야기 속에서 경찰의 성별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남경일 필요도, 여경일 필요도 없고 경찰의 성별을 굳이 밝혀야 할 이유도 없다. 륜 형사가 굳이 트랜스젠더일 필요가 있는가. 트랜스젠더면 안 될 것도 없지만 안 그래도 집중 안 되는 이야기 뒤로 작가가 자꾸 보이니까 오히려 반감이 들어서.
경과 태는 둘 다 학대의 피해자다. 태는 고통을 극복하려는 자들에 의해, 경은 고통을 없애려는 자들에 의해. 그렇지만 태는 앞으로도 감옥에 갇혀 죽을 때까지 잠잠한 고통 속에서 살 것이고, 경은 현과 함께 행복할 것이다. 사건이 해결되고 현과 경은 다시 결합했지만 경이 여전히 불안해하기 때문에 행복해야 하는 와중에도 음울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소설이 난해한데 반해 작가의 말은 너무 구체적이고 친절하다. 왜 썼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독자가 무엇을 느꼈으면 좋겠는지. 그냥 작가의 말을 읽는 게 낫지 않을까. 다른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어떤 스타일의 작가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것만 놓고 보면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 소설이다.
그래서 결국 살인 사건의 범인이 누구였냐면,
교단의 진짜 교주, 교단을 만든 자는 정신과 의사인 엽이었다. 그는 빛나는 것으로 나타나 경의 오빠인 효의 고통을 끝내주었고, 교단의 교리를 오해해 타인에게 원치 않는 고통을 주고 죽음에 이르게 한 교단 내부자들을 죽였고, 감옥에 홀연히 나타나 태와 이야기를 나누고, 마찬가지로 교단을 오염시킨 태의 형인 한을 죽였다. 어떻게 했느냐 하면 외계인이었음;; 이야기 중간중간에 외계인이 자꾸 언급되더니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