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리뷰] 섬, 짓하다 - 김재희
한 여성이 얼굴을 난자당해 살해된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수차례 여성을 비방하고, 공격 모의 글까지 올렸던 중학생 이준희가 용의자로 검거되고 경찰청 소속 프로파일러 김성호 경사가 그 심문을 맡는다. 이준희와 면담한 후에 김성호 경사는 이준희가 범인일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하지만, 일선 형사들은 그의 프로파일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심문 이후 용의자였던 이준희는 자살 시도를 하고 만다. 중학생을 상대로 과잉 심문을 했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인터넷상에 김성호 경사의 신상이 유포되면서 그는 이 사건 수사에서 제외된다.
한편 삼보섬이라는 전라도 외딴섬에서 부녀자 연쇄 실종 사건이 벌어지고, 뉴스가 이를 보도하면서 사건이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다. 그리하여 이준희 살인사건에서 물러난 김성호 경사는 다시 이 사건에 차출되고, 같은 사건의 필적감정을 맡게 된 국립 민속박물관 소속의 여도윤 학예사와 함께 섬을 방문한다.
섬사람 모두 서로 알고 지내는 작은 섬. 섬사람들은 사건에 별로 관심이 없고, 경찰 역시 매스컴을 타기 전까지 수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진다. 흉흉한 섬의 분위기, 비협조적인 섬사람들, 안일한 시골 경찰들 사이에서 프로파일러인 김성호 경사는 일선 수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와중에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실종된 여성들이 죽었다고 생각한 유족들은 피해자를 위한 씻김굿을 준비하고, 굿판에서 귀신 들린 피해자의 유족이 그 자리에 참석한 김성호 경사에게 고함을 지르기 시작한다.
"네놈은 대죄를 지었어. 그 죄를 니가 빌고 또 빌어도 모자랄 판에 감히 남을 판단하고 벌을 주려고 쫓아다니고 있어? 이 천. 하. 의 대. 죄. 인. 놈. 아!"
얼굴을 난자당한 여성은 무엇을 위해 죽은 걸까.
외딴섬에서 세 명의 여성을 납치한 범인은 누구인가.
김경호 경사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피해자는 귀신의 입까지 빌어 이토록 분노하는 것인가.
죄와 벌. 그런데 온갖 벌을 피해자가 받는 부조리.
"감식 배제된 증거 없는 프로파일러 말은 그냥 무당이 되는대로 내뱉는 말과 다를 거 없다고 그럽디다."
수사는 김성호 경사 혼자 다 한다. 자신의 심리 감정을 일선에서 수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현장 수사까지 해야 한다. 어차피 믿지도 않을 거면서 왜 불러다 심문을 맡기냐고 화를 내기까지 한다. 사실 매스컴에 보도되기 전까지 일선 경찰들은 통상적인 탐문 수사만 진행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람이 셋이나 실종됐는데도 현실에 안주한 나머지 그냥 다들 스스로 떠난 것이라 치부해 버리고, 제일 기본적인 감시카메라 확인이나 피해자 통신기록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귀찮은 일은 대충 넘어가려는 시골 경찰들 그 자체. 이렇게 말하면 편견인가 싶기도 하지만, 어느 지방의 집단 성폭행 사건이나 어느 섬 염전 노예 사건 등에서 종종 이런 경찰들을 실제로 보곤 한다.
20년이 지났지만 결국 피해자, 가해자 위치는 달라진 게 없을 뿐이었다. 그들은 영원한 피해자, 가해자로 준비 없이 닥펴오는 성인기를 맞이하게 된다. 시간이 지난 후 오히려 가해자는 우연히 마주친 피해자의 등을 치며 웃을 수 있다.
"우리 그때 정말 즐겁게 학교생활 했잖아, 기억 안 나?"
줄거리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사실 이 소설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학교폭력이다. 살인사건 용의자인 중학생 김준희는 쓰레기통 같은 사이트에 쓰레기 같은 글을 올린다. 현실에는 아무도 없는데, 인터넷에는 나와 대화를 나누고 나에게 동조해 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점점 거기에 매몰된다. 그리고 외로움을 뛰어넘는 좀 더 지독한 학교폭력이 있다. 가해자는 잊어버리지만, 피해자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결코 잊어버리지는 못한다.
전개가 좀 편의적인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단 반전을 정해놓고 나머지 살을 붙인 것 같은 느낌. 그저 반전만 남고 이준희 살인사건, 부녀자 연쇄 실종사건을 포함한 나머지 이야기들이 다 흐릿해진다. 최후반에 김성호 경사가 진범에게 납치되는데, 추리를 하는 게 아니라 범인이 A부터 Z까지 전부 설명해 준다. 본인이 무슨 짓을 했고, 왜 했고, 어떻게 했는지. 김성호 경사 스스로 알아낸 게 없음.
진범에 대한 복선이 꽤 노골적이게, 꽤 많이 깔려있어서 조금 예상이 되긴 하다만 그래도 재밌다. 반전을 밟은 상태에서 소설을 읽어서 진상이 밝혀지는 순간이 놀랍지 않았던 게 조금 아쉽다. 김성호 경사를 주인공이라고 치면 결말은 조금 열린 결말이다. 모든 진실을 알게 된 김성호 경사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띠지의 내용이 책의 내용과 전혀 관계가 없어서 놀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