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짱 많음
프롤로그
밤 중에 불륜을 저지르는 두 남녀.
1부
<딜라일라>
그간 볼일을 잔뜩 보고 누구도 청소한 적이 없으니 변기를 생각하면 어둠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가늠할 수도 없이 오랜 기간 감금되어 있는 소녀. 감금장소는 벽과 바닥 그리고 변기뿐인 지하실. 단 한 줄기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다. 어둠 속 방치라는 지독한 학대. 식사라고는 불규칙적으로 주어지는 개밥그릇에 담긴 곤죽 같은 오트밀뿐. 감금된 이후 몸을 씻은 적도, 지하실을 청소한 적도 없다. 그렇지만 그 더러운 변기물이라도 마셔야 생존할 수 있는 처참한 상황.
소녀는 오랜 기간 뭉툭하게나마 갈아놓은 숟가락으로 납치범을 찌르고 어둠 속으로 탈출한다.
2부
<메러디스>
각자 일은 바쁘지만 아들딸과 함께 행복한 생활을 꾸리고 있는 조시-메러디스 부부. 어느 날 메러디스의 고객이 행방불명되고, 뒤이어 메러디스와 그녀의 딸 딜라일라도 함께 사라진다. 얼마 후 먼저 실종된 셸비는 강둑에서, 메러디스는 허름한 모텔방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셸비 사건에 대해서는 그녀의 남편이 범인으로 체포되고, 메러디스는 시신에 자해한 상처가 가득했고, 유서도 있었기에 자살로 처리된다.
딜라일라는 안전해. 그 아이는 괜찮아. 당신은 딜라일라를 절대로 찾지 못할 거야. 그러니깐 애쓰지 마.
이후로 11년 동안 딜라일라는 발견되지 않았다.
<케이트>
조시-메러디스 부부의 이웃사촌이자 친한 친구인 케이트. 모녀의 실종 이후, 사건의 추이를 곁에서 지켜보고 조시를 도와 모녀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그녀의 연인인 비아는 위험한 일에 발을 담그는 행동이 맘에 들지 않는다.
<레오>
누나가 나타나 아빠의 상처를 다시 건드린 바람에 아빠는 꼭 엄마가 막 돌아가신 그때처럼 슬퍼하고 있다.
세월이 지나 열다섯 살이 된 조시-메러디스 부부의 아들 레오. 누나의 일은 이제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아빠는 엄마와 누나가 죽은 이후 내내 괴로워했다. 이제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았는데, 이제와 다시 나타난 누나가 달갑기만 하지는 않다.
사실 가장 놀랐던 부분은 딜라일라 파트 직후에 "11년 전". 1부 파트 읽는 내내 괴로웠는데, 이 지독한 환경에서 11년을 지냈다고 생각하니 픽션인 줄 알면서도 마음이 무너진다. 사실 메러디스와 셸비 살해범은 별로 안 궁금하고, 왜 딜라일라가 저 처참한 환경에서 11년이나 감금되어야 했는지가 제일 궁금했다.
11년 간 감금된 아이의 시점은 1부에 한 번 나오고, 2부에서는 엄마인 메러디스, 아들인 레오, 이웃집 케이트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그때의 상황을 서술한다. 시기와 시점이 엇갈리며 서술하기 때문에 직소퍼즐을 하나씩 끼워 넣는 것처럼 이야기가 진행되고, 3명의 이야기가 맞춰졌을 때 비로소 진실이 드러난다.
주인공 격인 메러디스의 직업은 출산도우미인데. 미국은 집에서 분만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런 직업도 있나 보다. 여하튼 그래서 작가가 평소 가지고 있던 분만에 대한 생각이 잘 드러난다. 병원과 의사와의 관계에서 을의 위치에 놓이게 되는 산모, 그 와중에 당하게 되는 부당한 대우들, 분만 시 겪게 되는 고통 같은 것들. 이를 포함해서 다분히 여성주의적인 소설이라고 느꼈다. 작중 남성들은 대부분 여성의 파트너로서 기능하고, 진행되는 이야기를 따라갈 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건 모두 여성이다.
글쎄. 등장인물로 말하자면 비아는 최종보스니까 접어두고, 메러디스 좀 뻔뻔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급하게 아이를 맡겨야 할 때, 면대면으로 부탁해야 거절하기 힘들 거라고 두 아이를 데리고 일단 이웃집으로 쳐들어가는 데에서부터 그녀가 별로 좋게 보이지 않았다. 셸비의 아기가 장애를 입게 된 것이 의사의 과실이었을 때는 세상 정의로운 사람인 것처럼 나서더니, 자신은 셸비의 죽음을 야기하고도 책임에서 한 발 떨어져서 시체 수습을 돕는다. 아무리 정신이 나갔기로서니….
진짜 죄책감을 느꼈고 못 참겠으면 비아가 올 때마다 그녀에게 징징거리는 대신 자기 발로 경찰서에 가면 된다. 더는 못 견디겠어. 이렇게는 못 살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셸비 시체 보고 오면서 착실하게 신발 벗고 증거 인멸하면서 되돌아옴.
협박당하는 건 왜 끝끝내 남편한테 얘기 안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남편이 일을 그만두라고 할까 봐? 협박까지 당하는 상황이면 일단 수습을 하는 게 맞지 않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도 아니고. 당장도 아이 맡길 데가 없어서 애들 데리고 이웃집을 전전하면서, 그저 "나는 내 일도 사랑해."만 반복할 뿐. 아들이 단순히 엄마랑 떨어지는 것 말고도, 보모의 집에서 괴로운 일이 있다는 걸 직감하면서도 울고불고하는 아이를 또 갖다 맡긴다. 그 와중에 아이 하나 더 낳고 싶다고? 그게 가족 관계를 더 단단하게 해 줄 수도 있을 거라니, 이게 무슨 대가리 꽃밭 같은 생각인지.
메러디스가 남겨놓은 유서 때문에 읽는 내내 조시가 어떤 나쁜 놈인지 계속 경계하고 있었는데, 아아, 끝까지 좋은 남자였다. 딸은 되찾았지만 그간 잃은 것이 너무 많다. 게다가 담당 경찰로 웬 미친 여자가 걸려가지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 엄마와 누나의 죽음 이후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학교에서는 따돌림을 당하는 레오. 나름대로 좋은 환경이었지만 여하튼 11년 간 갇혀 살았던 딜라일라도 불쌍하긴 마찬가지. 딜라일라 대용으로 11년 간 처참한 환경에 감금되어 있던 소녀는 말할 것도 없다. 같이 감금되어 있다고 믿었던 "거스"가 상상친구였다는 데서 마음이 찢어진다.
등장인물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깠지만, 소설은 매우 재미있었다. 그냥 재미있는 거 말고,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안절부절못하고 책장을 넘긴 건 오랜만이다.
1부에서 탈출한 아이는 딜라일라가 아니었다. 딜라일라의 실종이 전국구로 유명해지자 밝혀지지 않은 범인과 본인들을 동일시한 정신 나간 부부가 비슷한 여자애를 납치해서 세뇌한 것.
소녀의 탈출 이후 조시에게 반한 여자 경찰이 유전자 검사 결과를 거짓을 알려줬다. 포기하지 못하고 딸을 찾아 헤매는 조시가 안쓰럽다고…, 실망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대. 나한테는 거의 범인급 빌런임.
첫 번째 희생자인 셸비는 비아와 메러디스가 음주운전으로 치어 죽이고 시체를 유기한 것이다. 메러디스가 죄책감에 경찰에게 가겠다고 하자 비아는 메러디스도 죽였다. 메러디스를 협박해서 살해하고 자살로 가장하는 부분이 나한테는 좀 개연성 없게 느껴졌다. 비아는 두 사람의 싸움을 목격한 딜라일라를 차마 죽이지 못하고 자기 집 다락방에 감금해 길렀다. 11년 간 다락방에 여자애를 키우고 있었는데 케이트는 그걸 모를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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