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평론가 현수빈은 요새 가장 잘 나가는 멘토 강사다. 일적으로도 승승장구하는 중이고, 같은 다세대 주택-라일락 하우스-에서 어릴 적 같이 살던 소꿉친구 박우돌과 몇 년 전 재회하여 행복한 연애 중이다.
수빈은 어린 시절, 라일락 하우스에서 살던 시절에 대한 신문 연재 칼럼이 인기를 얻게 되자 더 본격적인 작업을 위해 그 당시 라일락하우스에 같이 살았던 사람들을 수배하기 시작한다. 우돌의 가족, 그림같이 예뻤던 신혼부부, 사이좋은 세 언니들….
하지만 당시 같이 살았던 사람들을 하나둘씩 만나게 되면서, 수빈은 가난했지만 정겨웠을 그 시절이 사실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금슬 좋아 보였던 신혼부부의 새신랑은 긴 머리 언니랑 바람을 피웠고, 그 수줍었던 새신부는 곗돈을 들고 야반도주를 했으며, 방 한 칸에 옹기종기 살고 있던 세 언니-긴 머리언니, 목발언니, 경상도언니-는 사실 서로를 미워하고 있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문간방 총각이 연탄가스에 질식해 죽은 사건에 대해 현수빈 본인은 자살이라고 생각했는데, 목발 언니는 같은 사건을 사고사라고 알고 있으며,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는 당시 정황을 보면 살해된 것 같다고 한다.
"29년 전 구질구질한 가난뱅이들이 다가구 주택에서 개미처럼 모여 살다 벌어진. 너무 흔해서 하품이 다 나오는 사건이라구. 여기서 뭘 더 캐겠다는 거야? 뭘 더 뒤져서 내 지랄 같은 유명세에 뭘 더 보태겠다고 난리야? 무슨 냄새를 맡고 다녔기에 이따위 걸 얻어온 거냐구!"
사실과 다른 미화된 추억. 서로 다른 기억과 엇갈리는 증언들. 당시 관계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수록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만 쌓여가고, 수빈이 본격적으로 과거를 캐내고 다니자 웬일인지 우돌은 이에 대해 크게 화를 낸다. 두 사람이 싸운 와중에 수빈의 인터뷰 내용이 와전되어 수빈의 커리어는 망가지고 인터넷에서는 조롱의 대상이 된다. 설상가상 수빈이 다녀간 직후 경상도 언니-임계숙-이 시체로 발견되어 수빈은 용의 선상에 오르게 된다.
과연 영달오빠의 죽음에 관한 진실은 무엇일까.
우돌은 수빈이 과거를 알게 되는 것을 왜 이렇게 두려워하는 걸까.
과연 경상도 언니는 왜 수빈이 그녀를 다시 찾은 이 시점에 독살을 당한것인가.
"우리 어렸을 적 살던 집 이야기를 쓸 거야. 커다란 라일락 나무가 있던 그 집."
소위 말하는 '아침드라마' 같은 소설이었다. 노란 장판 감성하고는 다른데, 여하튼 한국 소설이라는 느낌. 중반부까지 읽을수록 수수께끼가 쌓여만 가서 궁금하긴 하다. 여러 사건들이 모여서 서사가 되고 스토리가 되는데, 사건 하나하나가 있을 법한 일들이야. 곗돈 타먹고 도망치는 사람, 옆집이랑 바람피우는 사람, 남몰래 이웃집 애들을 만지는 사람, 술에 절어 동사무소에서 돈 내놓으라고 소리치는 사람. 이런 현실적인 감성이 싫어서 한국 소설은 잘 안 읽는데, 같은 작가의 "대나무가 우는 집"을 재밌게 읽었거든.
수수께끼는 풀렸지만 이야기는 계속된다. 딱히 절정이 없이 잔잔하다. 스토리 자체는 괜찮은데 중간중간에 로맨스가 거슬려. 수빈이랑 우돌이랑 꽁냥대는 것도 부담스러워서 보기 싫고. 말로 내뱉으면 형태가 고정되니까 사랑한다는 말은 안 한다는 우돌의 개똥철학, 애교 넘치는 연하남 의철, 자기 잘 난 걸 너무 잘 알아서 두 남자를 휘두르는 수빈.
그래. 짐승들은 지 애미하고도 한다드라.
세 사람의 삼각관계가 시종일관 이야기의 곁다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끝까지 파헤쳐보면 결국엔 사랑이다. 이도저도 다 사랑 때문에 벌어진 일이야. 모든 궁금증이 해소되면서 소설이 갑자기 끝난다. 바닥을 쳐버린 수빈의 커리어, 수빈-우돌-의철의 삼각관계가 어떻게 됐는지는 안 나온다. 과거를 모두 알게 된 수빈과 우돌은 행복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의철이랑 잘 됐으면 좋겠다. 과거의 사건 때문에 아니라 우돌은 잘 나가는 수빈에게 열등감이 있는 것처럼 보임. 이거 완전 로맨스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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