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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도서 리뷰] 별뜨기에 관하여(1) - 이영도

by 서미도 2024. 7. 17.

 당신의 삶이 당신의 우주에게 바치는 경의이길

 

카이와판돔의 번역에 관하여
 
때는 어떤 미래의 통일 한국, 어느 날 갑자기 지구에 나타난 외계 문명 '범은하 문화교류촉진위원회', 일명 "문교촉위". 그들은 막강한 기술력을 자랑하며 지구인들에게 그들이 짝지어준 다른 외계 문명과 교류할 것을 제안한다. 예상을 뛰어넘은 그들의 첫 과제는 바로 서로의 '동화'를 교환하는 것!
 
지구에서는 "신데렐라"를, 위탄에서는 "카이와판돔"이라는 동화를 보내왔다. 지구 각지의 은하표준어 전문가들이 각자의 언어로 "카이와판돔"을 번역하는 임무를 맡게 되지만, 통일 한국에 유일한 우주어 전문가는 한국어는 사라질 언어이며 어차피 영역본이 채택될 거라며 그다지 한국어 번역에 의욕이 없다. 하지만 그녀를 경호하는 인민군 출신 박대위는 초장부터 포기해 버리는 그녀의 태도가 못마땅하다.

“조선말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리선생님.”
"이건 자연법칙이야. 사라지는 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특별한지는 중요치 않아. 오직 세력만이 중요하지. 내가 화를 내거나 저항하지 않는 것도 이것이 자연법칙이기 때문이지."
“소멸이 아니라 포기입니다. 어른은 아이를 포기해야 도달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선생님도 안타까웠겠지. 평생 언어를 연구해 온 사람, 그렇게 언어학에 해박한 사람이 한 언어의 소멸, 심지어 모국어의 소멸이 어떻게 슬프지 않겠어. 하지만 박대위는 그것이 "소멸이 아닌 "포기"라고 말한다. 자신이 문화어를 "포기"하고 표준어를 사용하는 것. 그것은 한국어의 소멸이 아니라 취사선택을 하여 다음으로 넘어가는 과정이라고.
 
각국의 번역가들은 은하표준어 사전에도 없는 "카이와판돔"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는데, 나중에 밝혀지기를 그것은 위탄의 어느 지방에서만 사용되는 말, 즉 사투리였다. 세를 잃어가는 언어에 대해 회의적인 감정을 품고 있던 한국어 번역가는 결국 어느 우주의 사투리 동화를 번역하고 있었던 것.

주인공인 번역가 이선생님은 골초인 할머니다. 젊은 남자와 할머니 조합은 흔치 않은데 케미가 아주 좋다. 사실 표제작보다 이 이야기가 더 좋았다.

 
구세주가 된 로봇에 대하여

화성을 떠난 지 이틀째 되는 날, 내 일등항해사가 구세주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이 일등항해사는 로봇이다. 그리스도는 아담의 자손들의 원죄를 대속한 것이므로, 로봇인 자신의 원죄는 자신이 속죄하겠다는 것. 그야말로 종교를 인터넷으로 배웠어요. 근데 그럴듯 하지 않나. 그냥 원하는 대로 해주마 하고 알루미늄 십자가에 매달았다가 사흘 뒤 전원 다시 킴(!!). 그리고 쓸데없는 정보를 검색할 수 없도록 한 달 동안 인터넷을 금지한다.
 
종교계에서 눈 뒤집힐 내용이다. 진짜 돌은 생각 아닌가. 초단편이지만 이 단편집에서 제일 즐거웠다.

별뜨기에 관하여
나는 지구인 별뜨기꾼이다. 하는 일은 별들의 위치와 색깔, 밝기 등을 모두 고려하여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별자리를 볼 수 있는 장소를 찾아내는 것. 태어날 아이에게 원하는 별자리를 부여해 주고 싶은 부모들을 출산예정일에 맞춰서 적재적소로 보내준다.
 
한편 문교촉위에 의해 지구인에 짝으로 선정된 위탄에게 특별한 별자리를 만들어야만 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점성학이 없는 그들은 지구인 별뜨기꾼에게 협조를 요청한다. 하지만 임무를 맡은 위탄인 제르비는 게으르고 야만적이라는 이유로 지구인을 싫어한다. 특히 별뜨기꾼인 주인공을 거의 사기꾼 보듯 하고 있다. 과연 한 문명의 파멸을 막을 이 공동임무는 성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새로 태어날 아이들을 계속해서 우주로 쏘아 보내는 별뜨기꾼의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우리가 리볼피트인과 만난 것도 우연이었어. 하지만 그런 우연이 있으려면 일단 우주로 나오긴 해야 하지. 너, 지구인들을 우주로 보내고 있었던 것이지? 아기에게 길한 운명을 줄 수 있다고 말하면서.”

 
복수의 어머니에 관하여

오늘 선장은 우주선으로 나를 때려죽였다.

이게 뭔 소린고 하니, 쟤가 얼굴로 내 주먹 쳤어 같은 말장난이다. 우주선에 패대기쳐서 죽였다는 얘기다. 우주 항해에 필요한 항법사와 선장의 아들 중 누굴 살릴 것인지를 두고, 항법사를 구했다는 이유로 선장은 "나"를 아들의 원수로 규정짓고 몇 번이고 복제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죽이고 있다. 
 
처음에 이해가 안 돼서 몇 번 읽는데, 이해하고 나니 재미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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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탄인 항법사, 주머레이 박사는 선장을 친구로 여긴다고 했다. 선장 또한 오랜 기간 함께 항해해 온 그를 친구로 여겼고, 선택에 기로에서 그는 무쓸모한 자신의 아들이 아닌 주머레이 박사를 살렸다. 그렇지만 아들을 죽게 했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원망과 죄책감을 견딜 수 없었던 그는 결국 자신의 클론을 복제해서 자기 자신을 계속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 살해당하는 화자인 "나" 또한 선장 본인이었던 것.


이영도 단편 소설집 중 위탄인 시리즈로 묶인 처음 4편이다. 뚜렷한 기준은 없지만 내게는 이 소설들이 SF로 보이지 않는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우주인이 나오는 판타지 소설이지.
 
사실 이영도 소설 중에 가장 먼저 읽었다. 그 유명한 "드래곤라자", "눈을 마시는 새", " 피를 마시는 새" 다 너무 길어서 손댈 엄두가 안 나서. 그렇다면 짧은 것부터 시작해 볼까 하고. 눈마새, 피마새를 읽은 지금은 어떤 작가인지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아는 바가 없었음에도 " 카이와판돔의 번역에 관하여"를 읽고 나서 역시 글 쓰는 것도 재능의 영역이구나 생각했다. 설정 짜는 걸 참 잘한다. 스티븐 킹은 매일매일 많이 읽고 많이 쓰라고 했다. 하지만 갈고닦아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가 있다.

단편, 초단편임에도 담고 있는 내용이 많은데,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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