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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도서 리뷰/스포] 시체가 켜켜이 쌓인 밤 - 마에카와 유타카

by 서미도 2024. 7. 25.

 
도쿄대를 졸업하고 대학 조교수로 일하던 인텔리 기우라 겐조. 그는 돌연 야쿠자 조장의 딸과 결혼하더니 결혼 5개월 만에 아내를 살해하고 감옥에 수감된다. 12년의 형기를 마친 이후, 그는 도쿄의 노포 여관 하기노야에서 매춘 사업을 하다가 1년도 안 되어 자기가 데리고 있던 매춘부 여섯 명과 집단자살을 한다.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당시 여관의 허드렛일을 보던 15세의 우타라는 소녀뿐.
 
사건 이후 30여 년이 흐른 뒤, 당시 사건에 얽혀 자살했던 경찰관의 조카인 한 저널리스트가 우타를 비롯한 관계자들을 만나며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


별로 특별할 건 없다. 가스라이팅으로 한 집안이 파멸하는 이야기다. 처음부터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뻔히 보인다. 처음에는 친절한 얼굴로 한 가족에게 끼어든다. 그러다 점점 가스라이팅과 폭력을 동원하면서 본모습을 보인다. 가족들은 서로 반목하고 결국 자기 손으로 가족을 죽이는 지경에 이른다.

"밧줄을 목에 감아 단숨에 조여. 그러는 편이 고통스럽지 않으니까. 이런 식으로 계속 살려두는 것보다 그 편이 효도야."

 
그렇게 집안에 있는 돈은 박박 끌어다 바치고 결국엔 사돈에 팔촌까지 다 죽고 살아남은 여자들은 몸을 팔게 되는 뭐 그런 이야기. 가스라이팅 범죄 소설은 전개가 다 비슷비슷한 것 같다. 하고자 하면 한없이 잔인해질 수 있는 소재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끔찍한 묘사는 별로 없었다. 너무 뻔한 흐름이라 딸인 유키가 강제로 매춘을 하게 되는 건 시작부터 기정사실이었고, 언제 어떻게 떨어지는지 졸리는 마음으로 봤는데 의외로 그런 부분은 꽤 빠르고 담백하게 지나갔다.
 
사실 그런 부분뿐만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정말이지 전개에 낭비가 없다. 아주 빨리 읽었다. 대단히 잔인한 이야기지만 그런 부분의 묘사는 덜어내고 오로지 전개에만 몰빵 해서 비슷한 류의 다른 소설보다 상대적으로 감정소모가 적다. 잔학한 행위를 묘사할 뿐 그에 대한 인물에 감정에 대한 묘사가 별로 없다. 이걸 장점이라고 해야 할지 좀 애매한데, 실제 사건에 대한 논픽션이라는 설정에는 적합한 서술인지도 모르겠다. 폭행당하고 감금되어 있는 상황에 가족들은 모두 살해되고, 도움을 요청해도 경찰도 뇌물 먹고 기우라에게 붙고, 변호사도 뇌물 먹고 기우라에게 붙고 결국에 빚을 몽땅 떠안고 몸을 팔 게 된 유키의 심정이 구구절절 묘사돼 있으면 마음이 무너질 것 같다.
 
결국 다 읽어도 크게 시원해지지 않는다. 기우라는 결혼한지 고작 5개월 만에 아내를 죽이고 그 살인에 대해서 어떠한 설명도 변명도 항소도 하지 않은 채 12년의 형기를 그냥 수용했다. 이유는 명확히 알 수 없다. 그리고 출소한지 얼마 안 되어 성매매 산업에 뛰어들고 하기노야에 마수를 뻗쳐 10명의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이유는 명확히 알 수 없다. 돈을 벌기 위해서? 마냥 그런 것 같지만은 않다. 그는 도쿄대를 졸업한 인텔리다. 하기노야의 모든 식구들을 죽이면서 그 범죄가 들키지 않고 사업이 계속되리라고 생각했을 리 없다. 살인 및 매춘방지법 위반에 대해 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오자 그는 한순간에 사업을 정리하고 자기를 모시던 하인과 매춘부들에게 번 돈을 모두 나눠준다. 그는 여자들에게 선택권을 주었지만 그녀들은 떠나지 않고 기우라와 함께 동굴 안에서 죽기를 선택한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우타는 죽고싶지도, 살고 싶지도 않았지만 경찰서에 가서 이 죽음을 알리라는 기우라와 언니들의 명령이자 부탁이자 배려를 납득하고 자리를 뜬다.

기우라가 죽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가 교토에서 연탄을 구입한 것도 보았다. 물론 기우라는 그때도 “난 여기서 죽겠어.”라고 말했을 뿐 다른 사람에게 죽음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 말을 다른 여자들이 어떻게 해석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우타는 죽음을 강요받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우타는 죽고 싶지도, 살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집단 자살에 대한 숨겨진 비밀은 없었다. 아니 있긴 했다. 우타는 기우라의 그의 친누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그렇지만 그뿐. 기우라가 왜 우타는 학대하지 않았는지, 왜 마지막에 우타에게 죽으면 안 된다고 했는지에 대한 해답밖에 안 된다. 기우라는 대체 왜 그 모든 짓을 저질렀는가. 친누나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비뚤어진 건가. 여자들은 왜 떠나지 않고 자살에 동참했는가. 모든 게 불분명하다.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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