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섬에 있는 동안, 결코 살인범을 밝혀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계율이었다.
큰아버지가 죽고 난 뒤, 큰아버지 소유이던 섬의 처분을 위해 아버지와 나는 리조트 개발 관계자들과 함께 에다우치지마섬으로 떠난다. 섬을 방문한 인원은 관광 개발 회사, 건설 회사, 부동산 회사 사람들과 나와 아빠를 포함한 일곱 명. 외딴섬이지만 스마트폰의 전파 상태는 양호하다.
섬 중앙의 본관과 섬 외곽을 둘러싼 방갈로 다섯 채. 섬을 둘러보던 방문자들은 방갈로 한 채에서 말도 안 되는 크기의 폭탄을 발견한다. 하지만 아빠는 큰아버지가 갖고 있던 석궁이 불법 무기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것이 경찰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 신고하는 것을 주저한다. 별로 급할 것도 없다고 생각한 일행은 일단 하룻밤 자고 나서 생각해 보기로 하고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섬의 절벽 아래서 부동산 회사 사람인 오사나이가 석궁에 맞은 시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범인이 남겨놓은 쪽지에는 10가지의 규칙이 적혀있다. 범인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폭탄이 작동할 것이다.
저 폭탄은 뭐고 큰아버지는 이 섬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우리를 섬에 격리하고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의 정체는 누구인가.
십계의 내용은 요약하자면, 섬을 떠나지 말 것, 외부에 알리지 말 것, 범인을 찾지 말 것.
설정이 너무 작위적이라 별로 흥미롭지가 않다. 등장인물들이 정해진 틀 안에서만 움직이도록 하나부터 열까지 설정을 다 해놨잖아. 범인이 바로 눈앞에 총구 겨누고 있는 것도 아닌데, 범인이 쪽지에 열 가지 계율을 남겨놨다고 다들 착하게 그냥 그 말을 들어? 살인을 묵인하고 증거 인멸에 동참하면서? 생각해 보면 범인도 이 섬 안에 있을 텐데. 휴대폰 걷으세요 한다고 착실하게 걷어서 격리하고, 남들한테 알리지 마세요 한다고 외부랑 연락하면서도 아무 말도 안 하고. 사흘 더 머무세요 한다고 그 섬에 계속 머문다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한번 개겨볼 것 같은데. 식상하더라도 그냥 외딴섬이라 외부와 통신이 안 되는 쪽이 훨씬 재미있다.
멍청이 같은 방법으로 범인의 뜻을 구하는 건 또 뭐야. 우리가 지금 제대로 하고 있나요? 하고 범인한테 물어봄. 마치 계시를 받는 것처럼. 십계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연출을 하려고 했던 건 알겠다. 근데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범인의 계율도 점점 많아지고 복잡해지는 게 아주 짜친다. 언제 어디서 몇 분, 몇 초 동안 어떤 행동을 해라, 이런 걸 다 지정을 해준다고. 이게 무슨 추리고 트릭이냐. 손글씨로 그거 다 쓰느라고 고생 좀 하셨겠습니다. 나라면 그 복잡한 지시를 못 알아 들어서 죽었을 듯.
그렇다면 절벽 아래 오사나이 씨의 시체를 본 순간 범인을 알아차린 나는 대체 어떻게 하면 됐을까?
끝에 반전이 있는데 이것마저 너무 작위적이라 안 놀라워. 화자인 내가 첫 살인부터 범인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건 서술트릭도 뭣도 아니야. 데우스엑스마키나 같은 설정에 서술까지 이렇게 편의적이라니. 사람들을 섬에 가둔 사람은 당연히 범인이겠지. 범인이 사람들은 왜 가뒀을까. 폭탄이 밝혀지는 걸 두려워해서 그랬겠지. 그래서 안 궁금해. 이런 당연한 개연성을 뒤집는 반전인데 안 궁금한 내용을 뒤집어 봤자 별로 안 놀랍다.
그런데 정작 폭탄은 맥거핀이어서 큰외삼촌이 왜 섬에 그렇게 거대한 폭탄을 만들었는지, 죽은 사람들과 무슨 관계인지는 안 나온다. 거창한 제목에 그렇지 못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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