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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도서 리뷰/스포] 암흑관의 살인 - 아야츠지 유키토

by 서미도 2022. 8. 23.
그 기묘한 저택은 규슈 중부지방 구마모토 현 Y군의 깊은 산 숲 속에 있다.

가와미나미江南 다카아키는 나카무라 세이지가 손을 댔다는 암흑관을 보러 가던 도중, 지진을 만나 자동차 사고를 당하고 만다.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 반파된 차를 두고 암흑관까지 걸어간다.


건축을 전공하는 대학생인 "나"는 우라도 겐지와의 친분으로 암흑관에 머물고 있다. 겐지와 "나"는 사고를 당한 청년을 발견한다. 청년은 사고의 충격때문인지 말을 하지 못하고 필담으로 이름을 적어준다. 이름은 江南이라고 쓰는데, 읽는 법을 기억해내지 못해서 우선 '에나미'라고 부르기로 한다.

우라도 집안에서 "달리아의 날"이라고 부르는 9월24일, "나"는 우라도 집안의 비밀 연회에 초대되고, 연회에 참석하여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릿하고 맛없는 음식들을 대접받는다. 연회 도중 화장실에 갔다가, 18년 전 달리아의 날에 암흑관의 첫 번째 주인이었던 우라도 겐요가 살해되고 그 사위 다쿠조가 자살한 사건에 대해 듣게 된다.

이후 "나"는 암흑관에 머물면서 암흑관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하나씩 만나게 되고, 우라도 집안이 지닌 깊은 어둠과 끔찍한 비밀들을 마주하게 된다. 분리 수술을 거부하는 아름다운 샴쌍둥이 자매 "미도리"와 "미오", 기형아를 낳고 정신을 놓아버린 자매의 어머니 "미이", 조로증에 걸려 노인의 얼굴을 한 아홉살 소년 "기요시"와 아들 대신에 자신이 죽고 싶다고 매일 눈물 흘리는 어머니 "모와".

그리고 연회 다음 날, 고용인 히루야마가 보트 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매는 와중에 남관 건물에서 벨트에 목이 졸려 살해되고, 바로 다음날 겐지의 이모인 모와 역시 북관에서 스카프에 목이 졸려 살해된 채 발견된다. 하지만 가주인 우라도 류시로는 사고사로 처리해 사건을 덮어버리려 하고, 우라도 겐지와 "나"는 독자적으로 범인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한편, 중학생 소년 이치로는 친구들에게 허세를 부리기 위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우라도 집안을 탐험하러 갔다가 본의 아니게 암흑관 부지에 갇히고 만다.


Q1. 이미 죽음을 앞두고 있던 히루야마는 왜 살해당해야 했을까.
Q2. 18년 전 우라도 겐요 살인사건의 전말은 무엇인가.
Q3. 달리아의 날 그들이 먹고 마신 음식의 정체는 무엇인가.
Q4. 과연 이 집안이 감추고 있는 진짜 비밀은 무엇인가.


"비밀이야, 그건. 우라도 가문의 비밀. 그걸 알게 되면 살아 돌아갈 수 없을걸."

 추리 소설 단골 주제인 어두운 비밀을 간직한 미치광이 집안 이야기다. 책의 규모에 비해 살인 사건의 비중이 적고, 살인 동기도 소박한데, 사건 자체보다 저주받은 우라도 일가의 서사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히려 군상극에 가깝지 않을까. 전개가 지지부진한데, 우라도 집안에 얽힌 비밀들이 뭔지 너무너무 궁금해서 중간에 끊을 수가 없다.

추리소설 중에는 손꼽히게 두껍다. 너무 두꺼워서 선뜻 손이 안 갈 정도. 결코 쓸데없이 길지 않다고 작가가 자신 있게 말했는데, 사실 불필요하게 긴 것 같기는 하다. 등장인물이 서른 명에 육박하고, 건물의 규모도 동이 4동에 방이 몇 개인지 세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크다. 사실 사건 전개에 필요한 방은 몇 개 없기 때문에 전체 구조도는 볼 일이 별로 없었다.

시점이 그야말로 엄청나게 오락가락하는데, 시점이 바뀌는 부분의 연결이 아주 불친절하다. 게다가 시간대도 과거에서 미래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 앞뒤로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특히나 처음에는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읽기 쉬운 소설은 아닌 듯. 그리고 사건을 조명하기보다는 인물이나 분위기 묘사에 치중하는 편이라서 전개가 아주 느리다. 첫 살인이 1권 말미에서 일어나고 그 뒤로 두 번째 살인이 있기 전까지도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지루해 죽음.

"홀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같은 대사나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는 데다가, 독백이랄까 속삭임이랄까,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몽환적인 요소가 많다. 특히 이런 점을 이용한 서술 트릭은 거의 사기 수준인데, 너무나 훌륭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사기 아닌가 싶은…. 정말 놀랍긴 한데 너무 비현실적인 오컬트라서 호불호가 세게 갈릴 것 같다. 작품 전체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려서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만.

뭐 좀 물어보면 얼버무리고, 뭔가 말하려는 찰나에 방해가 들어오고 그런 부분이 많아서, 3권 중반까지도 떡밥만 계속 던지고 뭐 변변히 풀리는 게 없기 때문에 읽다 보면 정말로 진지하게 짜증난다. 화자인 "나"도 그것 때문에 작중에서 짜증을 내기도 하고. 이것도 대답을 미룰 거냐, 제대로 설명 좀 해달라는 둥…, 나도 똑같은 맘.

3권 중반 접어들면서 비밀이 하나씩 풀리고 전개에 속도가 붙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는 충격과 공포의 연속이다. 2권 넘도록 깔아둔 복선이 이런 의미였구나를 깨닫게 되고, 동시에 상상도 못한 반전들이 연달아 터진다. 정말 몇 장 넘기면 또 놀라고, 또 놀라고. 어마어마한 분량과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암흑관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컬트적인 분위기를 좋아한다면 아주 아주 추천. 샴쌍둥이 자매라던가 조로증 소년, 꼽추 할아범같이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프릭쇼 같은 느낌이라 이런 점도 기묘한 분위기에 한몫하고.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에 대한 배경지식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마지막 반전의 충격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시리즈를 순서대로 읽지 않더라도 십각관의 살인 정도는 먼저 읽고 오는 것이 좋다. 이 마지막 반전이 제일 맘에 들거든. 작품이 너무 길고 초중반까지 지루해서 읽기 힘들긴 하지만, 서사에 대한 빌드업 없이 스포일러만 봐서는 이게 무슨 미친 소리야,가 나올 게 뻔하기 때문에 스포를 밟지 말고 소설을 읽기를 권장함.


※ 스포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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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딱히 스포는 아니지만, 달리아는 첫 번째 가주였던 우라도 겐요의 아내다.

 

달리아의 날 연회에 그들이 먹고 마신 것은 죽은 달리아의 피와 살이다. 살은 염장해놓고, 피는 말려서 가루로 보관중이라고 합디다…. 달리아의 피와 살을 먹으면 죽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에.

 

히루야마와 모와를 죽인 것은 '에나미'였다.

 

그러니까 '가와미나미 다카아키'는 '에나미'가 아니다.그렇게 오해하도록 짜여진 서술 트릭이다. 에나미는 정말로 '에나미 다다노리'라는 별개의 청년이었다. 히루야마는 중상을 입고 어차피 죽을 게 뻔하기 때문에 고통을 끝내주기 위해 죽였고, 두 번째 피해자인 모와 역시, 매일 울면서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기 때문에 죽인 것디다. 범인에게는 나름의 자비였던 셈.

 

그리고 이 '에나미 다다노리'가 사실 진짜 우라도 겐지였다.

 

에나미(진짜 겐지)는 우라도 겐요가 손녀인 칸나를 겁탈 해서 낳은 아이였고, 칸나 역시 우라도 겐요가 딸인 사쿠라를 겁탈 해서 낳은 아이였다. 미쳤네 미쳤어. 그러니까, 우라도 겐요가 딸인 사쿠라를 겁탈해서 칸나를 낳고, 또 (딸이자) 손녀인 칸나를 겁탈해서 낳은 것이 바로 이 에나미(진짜 겐지)인 것이다.

 

겐지(실제로는 에나미)는 현재 가주인 류시로(사쿠라의 남편)가 고용인 모로이 시즈카와의 불륜으로 낳은 아이였다. 위의 사실을 류시로는 이미 알고 있었고, 우라도 집안의 피를 끊어버리겠다는 복수심에 아이를 바꿔치기 했다. 겐지와 에나미는 아홉 살 때 사고로 기억을 잃고 우라도 집안에 대한 류시로의 복수 때문에 뒤바뀐 채 살아온 것이다.

 

18년 전에 우라도 겐요를 죽인 것도 류시로다.

 

소설 초반에 등장하는 나카무라 아무개라는 건축가는 우라도 세이쥰이다. 이것도 나카무라 아무개 = 나카무라 세이지로 오해하도록 쓰여진 것.

 

마지막으로 화자인 나, 츄야의 정체가 바로 나카무라 세이지인 것이다! 그러므로 암흑관은 나카무라 세이지가 처음으로 관여한 건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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