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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도서 리뷰/스포] 월광게임 - 아리스가와 아리스

by 서미도 2022. 8. 22.

 

에이토 대학 추리소설 연구회 4인

유린 대학 워크 동호회 7인

유린 대학 스터티 멤버 3인

신난 학원 단기 대학 3인

네 그룹, 총 17명의 청년들이 어느 휴화산 캠핑장에 모였다.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함께 휴화산을 둘러보고 게임도 하고 밥도 해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처음 만난 남녀 사이에 다정한 분위기가 흐르기도 한다.

그러나 사흘째 아침, 신난 학원 여학생 중 한 명인 사유리(샐리)가 쪽지 한 장만 남겨놓고 밤중에 산을 내려가버리는 일이 발생하면서 상황은 점점 암울하게 흘러간다.

우울한 분위기가 퍼져가는 와중에 워크 동호회의 후미오(변호사)가 등에 칼이 찔려 죽은 채 발견되고, 쓰러진 그의 오른손 땅바닥에는 마치 다잉 메시지 같은 y자가 남겨져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년간 잠잠했던 화산이 분화하기 시작하고, 남은 15인의 청년들은 캠프장에 발이 묶인 채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간헐적인 지진이 계속되는 와중에 유린 대학 스터디 멤버 중 한 명이 쇼조가 실종되고, 뒤이어 워크 동호회 쓰토무(벤) 역시 칼에 찔려 살해된 채 발견된다. 그 옆에 떨어진 노트에는 마찬가지로 선명한 y자가 그려져 있다.

분화와 지진이 계속되고, 식량도 점점 떨어져 가면서 결국 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활화산을 내려가기로 한다.

이들은 분화로부터, 굶주림으로부터, 살인범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까.


Q1. 샐리는 왜 혼자 산을 내려가버렸을까.

Q2. 사라진 쇼조는 어디로 갔을까.

Q3. 범인은 왜 살인을 저지르는가.


학생 아리스 시리즈 첫 번째 이야기다.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아주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추리소설이다. 추리와 무관한 달에 대한 담론이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도 하고. 스토리도 그렇고, 글 자체도 참 잘 쓴 소설이다. 장면이 쉽게 상상된달까, 영화처럼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그래서 더 분위기가 묘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에가미 선배, 짧은 만남이었지만 정말 즐거웠어요. 부장을 만난 것만으로도 그 대학에 들어간 보람이 있었습니다.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을 앞두고 아리스가 에가미 선배에게 하는 대사인데, 이 대사가 에가미 선배가 어떤 사람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사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화자는 아리스지만 실질적인 주인공은 탐정 역의 에가미 지로인데, 읽다 보면 에가미 선배 묘사에 꽤 공을 들인다는 게 느껴진다. 말투도 지적이고 고풍스럽고, 뭔가 벽을 치는 것 같은데도 다정하고 부드러운 느낌. "에가미 선배는 꽃처럼 활짝 웃었다."라는 묘사가 나오는데, '꽃처럼 웃는다'는 표현이 지금은 흔한 문장이지만 처음 읽었을 때는 무척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야말로 선배, 여하튼 글로만 봐도 참 멋있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짐.

 

​범인은 우리 그룹에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룹끼리 충돌은 있을지언정 추리소설 연구회 사이는 계속 좋다. 실제로도 우리 그룹에는 범인이 없고, 아리스도 본인은 절대 죽이지 않았다며 화자=범인설을 버리라고 (독자에게) 말한다. 이것마저 거짓말인 경우도 있긴 하지만 여기서는 아님. 우리 멤버들끼리 서로 잡담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추리도 하면서 계속 분위기를 풀어주는데, 이런 점이 클로즈드 서클의 암울한 분위기를 중화시켜 준다.

추리 소설 연구회 회원들답게 온갖 그럴듯한 추리가 다 등장한다. 어디서 본 듯한 동기와 어디서 본 듯한 트릭을 주고받으면서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고, 뭔가 막 던져보긴 하는데 전문적이지는 않은 것이, 딱 추리 마니아가 할 법한 생각들이라 재밌다. 대화 속에서 꽤 다양한 추리소설 작가와 작품이 언급되는데 이것도 쏠쏠하게 재미있고.

정답. 과학수사라는 건 미스터리에 있어서 암적인 존재지.

닫힌 공간, 한정된 용의자, 과학수사의 배제. 탐정이 입수한 모든 증거는 독자에게 공평하게 전달되고, 마침내 "독자에 대한 도전"이 제시된다. 난 창의력이 부족해서 범인을 맞춘 적은 없고 전적으로 에가미 선배에게 맡기고 있지만, 이 "공평함"이 학생 아리스 시리즈의 모토다. 기발한 트릭이나 반전이 없어도 추리 소설이 참 재미있다는 걸 느낀다.

※ 스포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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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유린 대학 스터디 멤버 중 한 명인 넨노 다케시였다.

 

다케시는 캠프에서 처음 만난 샐리와 사랑에 빠지고 밤 중에 밀회를 가졌는데, 그 모습을 후미오와 쓰토무에게 들키고 만다. 두 사람은 취해있었고, 빈정거림을 듣던 샐리는 다케시를 뿌리치고 그 길로 산을 내려가 버린다. 하지만 내려가는 길에 분화가 일어나 샐리는 죽고, 다케시는 이에 대한 복수를 한 것.

 

일본어 한자에는 읽는 법이 여러가지인 경우가 많습니다. 후미오는 넨노를 도시노로 잘못 읽고 도と를 쓰려다 기력이 다해서 죽었다. 완성하지 못한 と가 마치 y처럼 보였던 것. 쓰토무의 시체 곁에 남아있던 y는 아예 오해를 일으키기 위해 범인이 일부러 남긴 것이었다. 

 

사라진 쇼죠 역시 다케시가 죽였다. 다케시는 샐리가 쇼죠를 좋아했을 거라고 잠깐 오해를 했는데, 어차피 이미 살인을 저지른 데다가 어차피 분화로 인해 죽을 거라는 마음에 욱해서 죽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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