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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도서 리뷰] 절대정의 - 아키요시 리카코

by 서미도 2024. 1. 2.

"정의 앞에 우선되는 것은 없으며, 이 세상은 정의에 의해 존재한다."
- 소크라테스 -

 

르포작가인 가즈키는 어느 날 한 통의 초대장을 받고 아연실색한다. 초대장의 발신인은 "다카기 노리코". 그것은 바로 본인이 자기 손으로 죽인 옛 친구의 이름이다.

 

가즈키를 시작으로, 같은 고등학교 동창인 유미코, 리호, 레이카의 시점을 차례대로 보여주면서 이들 네 여자가 어떻게 친구였던 다카기 노리코를 죽이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공부를 잘하는 노리코. 모범적인 노리코. 불의를 참지 않는 노리코. 범죄를 적극적으로 고발하는 노리코. 잃어버릴 뻔한 나의 권리를 찾아주는 노리코. 아무리 작은 범죄도 놓치지 않기 위해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노리코. 한 톨의 결점도 없이 완벽한 노리코. 티끌만 한 잘못도 반드시 법으로 단죄하고 마는 노리코. 정의를 칼처럼 휘두르며 남의 인생을 난도질하는 노리코. 나의 고통은 아랑곳 않고 나를 괴롭히는 자의 권리마저 끝끝내 찾아주고야 마는 노리코. 

 

네 명의 친구가 노리코를 죽이고 3년 뒤, 노리코의 초대장을 받은 그녀들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과연 그들은 왜 절친이었던 노리코를 다같이 죽여야만 했을까.

노리코의 이름으로 초대장을 보낸 사람은 누구일까.

아니면 정말로 노리코가 살아있는 걸까.


읽는 내내 답답해 죽을 것 같다. 르포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망치게 생긴 가즈키. 결혼 생활 내내 일은 안 하고 빚만 잔뜩 진 무능한 남편에게 양육권을 빼앗기고 위자료까지 지불해야 할지도 모를 유미코. 자기 남편의 "아이를 가질 권리"를 위해 노리코의 난자를 기증받아야 할 처지가 된 리호. 연기자로서의 커리어를 날려버릴 만한 스캔들을 폭로당하게 생긴 레이카.  네 명 다 너무 납득이 가는 사연이고, 이 모든 게 노리코의 정의의 칼날 아래 벌어진 일이다. 

"의미 있는 일을 위해서 작은 악행은 해도 된다는 거야?"
"어째서 그런 짓을 했어!? 불쌍하잖아!"
"어째서라니? 올바른 일을 하는 데, 다른 이유가 필요하니?"

 

노리코의 행동은 진짜 열받는데, 노리코는 정말로 정의롭기 때문에, 나라면 뭐라고 반박할까 계속 생각을 해봐도 할 말이 없다. 왜냐면 법적으로 보자면 노리코가 옳으니까. 그 행동으로 인해 얼마나 좋은 결과가 발생했는지, 한 사람이 얼마나 큰 고통에서 벗어나는지, 그런 인간적인 것들은 노리코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직 법적인 결함이 있느냐 없느냐, 노리코의 판단 기준은 그뿐이다.

 

그리고 아무리 흰색에 가까운 회색이라 하더라도, 노리코는 그것을 공론화시키고, 부풀리고, 진흙탕으로 끌어내려서 결국엔 새까맣게 먹칠을 하고 말거든. 심지어 거리를 두고 연을 끊으려 해도 노리코는 한 번 눈 안에 들인 먹잇감을 놓치지 않는다. 화도 내보고, 애원도 해보고, 대놓고 네가 싫다고 말해도 듣지를 않아. AI랑 얘기하는 것 같아. 속 터져.

"융통성?"
노리코는 진심으로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것이 정의보다 중요한 거야?"

 

정의란 멋진 말이다. 정의는 올바르고 공평하다. 노리코도 그렇다. 노리코는 너무나 정의롭기에 그녀의 말과 행동은 항상 올바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리코의 정의가 답답하고 역겨운 것은, 그녀의 정의에는 인간을 위한 마음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담배를 핀 학생에게 기회를 주고자 처벌하지 않고 주의를 준 교사는 파면을 당해 마땅할까? 퇴사한 회사에서 쓰던 볼펜을 계속 사용하는 것은 횡령죄를 저지른 것일까? 폐건물에서 추위를 나는 노숙자들은 길거리에서 얼어 죽어야 하고, 그들을 가엾게 여겨 눈감아준 공무원은 처벌받아 마땅할까요?

 

노리코의 정의 아래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스스로 잘못을 깨달을 기회도, 돌이켜 뉘우칠 기회도 잃고 만다. 그녀는 벌 받는 인간이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즐기고, 오직 단죄를 위한 단죄를 한다. 

 

요새 참교육이라는 말이 많이 쓰입니다만, 노리코의 정의는 그 "참교육"의 감성과 닮았다. 이 사람은 이런 죄를 지었어요. 우리 같이 욕합시다. 그 "참교육"의 목적이 교화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저 누군가의 잘못을 공표하고 조리돌림을 하는 게 목적인 것처럼 보인다. 죄는 죄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조금 더 인정과 자비를 베풀 수 있으면 좋겠다. 그저 내 한 몸 바르게 살면 그만이고 이런 절대적인 정의의 잣대는 자기 자신에게만 적용하면 족한 것을. 물론 그렇게 살기는 쉽지 않다. 

 

반전이랄까, 결말은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그냥 담백하게 끝났으면 좋았을 걸. 끝까지 고구마만 퍼 먹이는 소설인데 가독성은 좋다. 아주 빠르게 술술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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